[종이책]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한 오딧세이

이전까지 읽었던 모디오나의 소설들속의 등장인물들은 마치 부유하는 연기처럼 눈이라는 일부 감각기관으로는 인지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실체가 점점 흩어져 존재의 가능성 자체도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과연 바로 앞까지 주인공이 인지했거나 쫓았던 인물이 사실은 없었던게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소설들에서 이러한 존재에 대한 의심은 사실 감각 기관에 의한 직접적인 체화가 아닌 기억에 의해 시간의 차이가 빚어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모디아노의 소설은 끝없이 기억과 추억, 기록을 의심하는데 이것은 이들이 모두 사실은 매우 불완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억은과 추억은 그것을 가진 개인의 시각과 상황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옅어지고 심지어는 데자뷰처럼 다른 기억들과 혼합되기도 합니다. 기록 역시 대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놀랄만치 부분적으로만 한 사람의 존재를 담고 있을 뿐이지요.

모디아노는 지금까지 읽은 소설(동화까지 포함해서) 속에서 집요하게 이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일종의 끝판왕(?) 격인 게 바로 이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주인공 자신이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린 기억상실증 환자이기 때문입니다!

사설 탐정으로 일하는 주인공 기 혹은 롤랑은 프레디, 페드로 등으로 자신을 부르며, 점차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그 인물들의 행적을 추적합니다. 단서라고는 자신이라고 추정되는 인물이 있는 사진뿐이고, 그마저도 관련된 인물들의 기억은 서로 맞지 않는 가운데에, 주인공은 마침내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했던 과거 사건과 마주칩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정말 자신이 그 인물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소설속의 묘사는 극적이지만 현실 속의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신의 존재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편으로는 회사의 직원 중 한명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한 가족의 준 가장이자 아들이라는 여러 면중에서 사람들이 가지는 저에 대한 기억은 같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런 가운데에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게 된다면, 과연 저를 기억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기억으로 구성된 사항들을 확인 받는 것만으로 이전의 제 존재를 다시 찾거니 증명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의 존재 증명이라는 건 그러한 불안정한 여러 상대의 기억에 의존해서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jijab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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