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팔월의 일요일들 – 작가의 스타일, 개성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이 조금 해결 되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 단장’에 대한 평이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읽어 보지 않았고, 하루키 선생님의 작품은 어린 시절(고등학생)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보다 이 제목이 저희 세대에게는 더 익숙할듯 합니다.^^)가 전부라서 뭐라고 평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평가들의 공통점이 모두 ‘역시 하루키 스타일이다.’라는 부분에는 조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작가를 포함해서 예술가, 창작자들이 가장 고민하는 포인트 중 하나는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여기서는 문체가 아닌)과 개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라면 짧지만 단단한 문체. 그와 어울리는 비정한 인간상을 다루는 걸 개성이라고 볼 수도 있을테고. 모옌처럼 조금은 음흉하게 구렁이 담넘어가듯이 이야기의 개연성을 슬쩍 슬쩍 빼면서, 종국에는 안개속에 독자를 남겨두는 스타일도 있을 겁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이러한 작가의 고유함이 받아들여지기 힘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창작자들이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려는 건 이들의 태생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좀 길게 이야기했지만 모디아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리고, 특히 이 팔월의 일요일을 읽을 때마다 공통적인 사항들이 어렴풋하게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최근에야 기사단장 평을 듣고 깨달은 게 바로 이거였습니다. 작가의 고유성. 혹은 개성이런 점.

팔월의 일요일들 역시 이전까지 읽어 왔던 모디아노의 소설처럼 안개처럼 현실과 추억의 경계가 희미한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언제나 젋은 남녀는 적대적인 세상에 쫓겨 숨거나 어려운 상황을 전전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리고, 주인공이 그 시절을 아련하게 회상하면서, 정말 그것이 자신의 경험 그자체인지 스스로를 의심하는 결말분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벨상 수상자의 작품은 언제나 읽는 게 기대됩니다. 어쩌면 작가의 나름대로 클리셰겠지만, 이것은 한 편으로는 프로 레슬링처럼 독자와의 일종의 약속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름의 재미일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 소설속에서 사라진 주인공의 연인 실비아의 신원에 대한 걱정보다는 그녀가 정말 소설 속의 그 시간 속에 존재했을까라는 의문이 먼저 드는게 모디아노식 소설이 가지는 독자들과의 약속이 아닐까 싶습니다.

jijab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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