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저지대 – 작가의 초기작이 보여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파편들

헤르타 뮐러의 데뷰작이자 시적인 언어로 씌여진 단편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읽는 동안 가끔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운 공감각적 심상의 표현이 나와서 조금 당황스로웠습니다. 이전 작품을 읽었을 때도 그런 부분들이 간간히 나왔지만, 제가 워낙에 시에 대해서 낯설고 기존의 일상적인 언어로 이루어져 있던 소설 문장에 너무도 익숙해서 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읽어가는 후반쯤에는 어느덧 여러 감각이 혼합된 문장에 꽤나 감탄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하철에서 아침 잠과 싸우면서 조금씩 읽어가다가 만나는 그런 표현들에 “이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라는 새로운 읽기의 즐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소설은 이런 언어적인 유희의 발견에서 느끼는 기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분위기입니다. 표제작인 저지대도 그렇지만 작품 내내 어느 작은 마을 안에서 인간들의 세속적이고 삶에 짓눌려 있는 하루 하루가 누군가의 일기장들에 새겨지는 이야기들입니다.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의견”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짧은 구성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입니다. 체재내에서 순종하지 못하고 독립적 개체로서 의견을 내는 주인공 개구리의 삶을 정말 드라이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데, 직접적인 설명이 없어도 그가 맞이한 순간가 감정이 어떨지 잘 전달되었습니다.

글을 쓴다면 이런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기상관측소 소장은 도시 주변을 떠도는 새하얀 구름 위로 개구리를 보냈다. 개구리는 흰 구름 위에 혼자 외로이 서 있었다. 하얀 안개가 올라와 개구리의 구두를 꿀떡 삼켰다. 개구리는 도시를 내려다 보았다. 커다란 흰 구름이 일어나 개구리를 통째로 꿀떡 삼켰다.
저지대-“의견”

jijab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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