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숨그네 –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환경에 대하여…

읽는 내내 불편한 소설이었고, 읽는 시간 마저도 출퇴근 시기였기 때문에 한 동안은 영 개운치 못한 아침과 저녁이었던 것 같습니다.

파피용에서도 그랬지만 수용소처럼 패쇄적인 공간을 다룬 작품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바닥까지 떨어트리고 짓밟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유와 인권, 인간 가치에 대해 되짚어 보는 효과를 줍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읽는 내내 그런 교훈적인 거울 효과보다는 가슴 한 구석 밑 바닥에서 들어차서 끌어 올리고 싶지 않은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높이, 저 높이에 둥근 달이 떠 있었다. 발밑의 눈처럼 하얗고 시린 입김이 눈 앞에서 날아갔다. 자동권총이 우리를 겨누었다. 그리고, 비자 내렷.
이 세상에 그 보다 더한 수치는 없었다. 설원에 우리뿐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설원에서 서로서로 바짣 붙어 똑같은 걸 강요받는 우리 모습을 보는 이가 없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나는 용변이 급하지 않았지만 바지를 내리고 쭈그려 앉았다. 그 밤의 세계가 얼마 인정머리 없고 고요하던지, 서둘러 대소변을 보는 우리를 얼마나 웃음거리로 만들던지…

러시아의 강제 수용소에 들어가는 첫날의 묘사를 하는 부분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굴욕을 받는 것으로써, 앞으로 펼쳐질 수용소의 험난한 일들을 예고해 주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이야기기 진행되는 동안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잔인한 생존 욕구가 처절하게 서로 붙이치는 모습이 매 장마다 나옵니다. 한 참을 읽는 동안 이 기시감을 어디에서 느꼈던가 했는데… 바로 군대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나라를 지킨다는 명목하에 손발 묶이듯 옹여매진 자유와 이성적이지 못한 군 간부들의 명령, 빵한조각과 팬티 한 장으로 내리 갈굼을 정당화 하던 고참들.

돌이켜 보면 한국의 군대라는 조직과 시설만큼 이 강제 수용소와 유사한 곳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군대 복무 시절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인간에 대한 실망감이었습니다. 자신의 본능과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해, 전우애는 고사하고 타인을 거리낌 없이 희생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인간 본연의 모습이었달까요? 소설 속에서도 그같은 장면들이 나옵니다. 자신의 배고품을 위해 아내의 얼마 안되는 스프를 훔쳐 먹는 법무사나, 동료의 빵을 몰래 훔쳐 먹다가 그들에게 걸려 구타 당하는 남자의 이야기 등.

외면하고 싶은 모습들이지만 인간의 가장 적나라한 순간들을 일주일에 4~5번 정도는 이 책에서 목격해 왔습니다.

인간의 가치같은 숭고한 고뇌보다는 개인적인 양심에 대해 묻게 됩니다.
나는 과연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jijab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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