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기억이 나를 본다 – 건조하면서도 차가운 북국의 언어

노벨상 수상자들 작품을 돌아볼 계획을 세우면서 가장 걱정했던 건 시를 읽는 문제였습니다. 저는 감성이 그렇게 발달한 사람이 아니라서 시에 공감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머리가 좀 자란 대학교 시절 잠시 문학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시에 대한 엄청난 충격-언어의 압축이자 순식간에 소설이 차지하는 300여페이지의 의미를 관통하는 전격적인 능력에 대해서-을 받은 뒤로는 더욱 더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시는 저같은 사람하고는 맞지 않는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결심을 했으니 결국 이 무서운 ‘시’에 한 발짝 살짝 담가 보기로 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작품이 그렇게 많이 번역되어 있지 않아서, 우선 들녘에서 나온 이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첫 느낌은… 서늘하다는 거였습니다. 작가의 출신때문인지, 그 곳의 풍경을 옮겨서인지 모르겠지만, 북국의 차가운 바람이 직접 얼굴에 들어닥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춥다는 표면적인 감각이나 외로움과 같은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감정적 감각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일상을 관조하면서 천천히 동네 마실 다니듯이 둘러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보면서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다음에 읽을 책은 이 노 시인과 미국 번역가겸 시인과의 서신을 묶은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시집만큼은 언젠가 다시 읽어야 될 것 같습니다.

작가가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은 것처럼 저는 아직 이 책 안에 든 모든 것을 다 보고 읽지 못했으니까요.

jijab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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