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모두 변화한다 –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의미 없는 방향이든

지난번 모옌 소설 감상문에서는 너무 자극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모옌의 책은 이제까지 읽은 그의 소설 답지 않게 조금은 담백한 맛을 풍깁니다.

책표지에 둘러친 띠지에서 밝혀져 있듯이, 이 책은 그의 소설이 아닌 회상록 혹은 수필집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그가 소설속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에 대한 가학적인 집요성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변화해 가는 그와 그 친구들을 담담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모옌은 집필의 동기를 밝히고 있습니다. 인도의 한 편집자가 작가에게 중국의 지난 30년여년에 걸친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달라는 부탁에 관해서입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편집자가 작가의 마음이 가는대로 자유롭게 써 달라는 주문에 그만 승낙해 버렸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쩌면 편집자는 영악하게도 글쓰는 이들의 마음을 간파하고 청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끄럽지만 3류 작가인 저도 작가라는 버겁고 큰 이름을 짊어지운채 “작가님 마음대로 쓰셔도 됩니다.”라는 부추김을 받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당장에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허세가 붙곤 합니다. 그 덕분에 고생 아닌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나마 소일거리처럼 이런 글자들도 어렵지 않게 적을 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인 모옌도 이 거부할 수 없는 부탁을 그만 수락했다가 낭패스럽다는 듯이 서문 말미에 툴툴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비록 속은것처럼 쓰기 시작했지만, 모옌은 마치 소설속의 주인공을 묘사하듯이 그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중국의 변화된 30년사를 써내려 갑니다.

지금까지 읽어온 모옌의 소설들이 갖은 재료와 양념을 아낌없이 쏟아 붓고, 1류 셰프가 온갖 기교를 부려서 혀의 감동을 이끈 요리였다면, 이번 회상록은 매우 소박한 가정식 백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본적인 국과 된장찌개 정도의 작은 찬거리만 있는 밥상 말입니다.

똑같이 먹으면 배가 부르겠지만, 두 음식들 사이에는 서로 다른 포만감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회상록은 모옌 특유의 기술적인 부분을 모두 제거했지만, 그의 작가적인 관찰자 시점이라는 기본적인 재료로 충실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실 모옌은 이미 소설 속에서 중국의 30년 사를 이야기해 왔습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 영역이 중국에 한정되어 있다는 비판을 하곤 했습니다. 특히나 작품 상당수가 그의 공향인 둥베이 향, 가오미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이 더욱더 나올 빌미를 제공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는 작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이며, 이상의 미덕은 제가 알기로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관해 쓴 작가들에게 영광이 돌아갔다는 점입니다. 모옌은 중국의 변화된 30년간이라는 한정되고 특이성 있는 시공간을 무대로 글을 썼지만, 동시에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와 정서에 관한 눈길을 잃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읽어 온 소설들은 안개와도 같았습니다. 왜 이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는지 내내 의구심이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회상록을 읽으면서 비로소 우둔한 저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30년간 중국에서 벌어진 물질 추구적인 변화에 대해서 작가는 언제나 냉정하게 관찰을 해왔습니다. 회상록 말미에 옛친구가 찾아와 경연 대회에 출전하는 자신의 딸을 잘 봐 달라며 보내는 청탁 봉투를 작가는 스스럼없이 받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모두 변화하는 관찰 대상에서 작가 자신도 거기서 예외일 수 없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모옌의 관찰은 지금도 계속될 것입니다. 살아 있는한, 살아 가는 한 계속해서 인간은 변화해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시지프스의 바위같은 천형처럼 그러한 변화 과정을 세세하게 잡느라 애쓸 것입니다.

jijab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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