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 깊은 구절]김대중 자서전 1

… 나는 초원복집 사건이 일어났을 때 예감이 좋았다. 아무리 여당 후보지만 김영삼 씨도 별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이것으로 선거는 이기지 않을까.’ 또한 이 시간을 계기로 선거판에서 지역감정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용공 시비와 함께 지역감정은 선거 때마다 유령처럼 나타나 판세를 흔들었다. 하지만 지역감정은 선거 때마다 유령처럼 나타나 판세를 흔들었다. 하지만 지역 기관장들이 나서서 이렇듯 지역감정을 선동한 사실이 밝혀진 이상 경상도 민심도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다. 저들이 사실을 왜곡하여 민심을 속인 것이 들통 났기 때문이다. 경상도 유권자들도 여당과 정부의 태도에 격분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 투표일을 2~3일 남기고는 부산과 경남, 대구와 경북 지역에 다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흑색 선전물이 나돌았다. 내용은 대개 이런 것이었다.
“정주영 한 표가 김대중 표가 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김대중이 당선되면 경상도 지역에 피의 보복이 있을 것입니다.”
“김영삼 당선시켜 경상도민의 긍지를 살립시다.”
… -다시 국민을 울렸다 중-

… 나는 40년 동안 정치를 했다. 그런 내가 정치를 그만두니 사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나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버릇처럼 내 안의 문제점과 가능성을 점검했다. 백지에 가운데 줄을 긋고 오른쪽에는 내가 안고 있는 문제점, 왼쪽에는 아직 남아 있는 가능성들을 적어 비교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해보니 왼쪽에 많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우선 800만이라는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다. 또 항상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 주는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나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수 많은 동지들이 있었다. 나는 또 건강을 지니고 있었다. 험한 대통령 선거를 세 번이나 치르고 40년 동안 가시밭길을 헤쳐 왔지만 건강했다. 그리고 내 안에는 열정이 남아 있었다…

… 나는 지난 40년 동안 간절히 바랐던 목적 달성과 국민과 민족을 위해 해보려던 뜻을 펼칠 기회를 얻는 데 또다시 실패했다. 가장 큰 슬픔은 낙선보다 지역감정과 용공 조작에 좌우되는 우리 국민, 미래를 위한 변화보다는 이기적 안전에 집착하는 국민에 대한 실망이었다.
그러나 국민은 나를 버려도 나도 국민을 버릴 수 없다. 국민은 나의 생명의 근원이요 삶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 특히 호킹 박사와의 만남은 감동이었다. 그와는 같은 지붕 밑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반년을 함께 보냈다. 그는 친절하고도 정겨운 이웃이었다. 박사는 눈과 귀와 두뇌를 제외하고는 신체 모두가 불구였다. 입은 간신히 밥을 흘려 넣을 정도이며, 손가락으로는 컴퓨터에 저장된 음성 장치를 겨우 두들겼다. 그렇게 몇 마디의 말을 건넬 뿐이었다. 그의 불행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박사와 두 아들을 남겨 두고 아내가 가출해 버렸다.
박사는 이러한 불행을 이겨 내고 뉴턴, 아인슈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과학자가 되었다. 나를 더욱 감동시킨 것은 박사의 학문적 업적보다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였다. 실로 경이로왔다…-케임브리지의 추억-

jijab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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