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철학대 철학 – 928페이지의 긴 여정끝에 닿은 깨달음 하나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제목이 다소 고리타분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철학’이라는 조금 오랜 된 냄새나는 단어들이 두 번이나 들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녀석 좀 흥미로운 구석이 있습니다. 철학대 철학. 무슨 마징가Z대 태권V같은 느낌입니다.

혹은 요즘 유행하는 나는 가수다같은 서바이벌식 배틀물 같은 분위기도 풍깁니다.

처음 이 책과 마주했을 때 느낀 점은 먼저 호기심이었습니다. 도대체 철학과 철학을 어떻게 쌈질 붙이는 걸까?*_* 그렇지만, 곧 도달한 택배에서 꺼내진 녀석의 존재감은 저를 좌절시켰습니다…OTL

보시다시 엄청 두꺼웠습니다.ㅜ.ㅡ 제목의 무게만큼이나 쌈구경 하는 여정은 매우 험난 할 것을 예견하는 듯한 자태입니다.

이렇게 두꺼운 책은 너무 욕심 부리지 않고 읽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하루 꾸준히 한 챕터씩 읽어 나가는 게 필요합니다.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섣부르게 이 책을 다 읽을테야라는 결심은 얼마 안가서 독서하는데 큰 장애가 되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도 하루에 한 챕터씩 꾸준히 읽어 나가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 책은 동양과 서양의 철학사조간의 대결을 각각 28장씩 나눠서 보여줍니다. 즉, 저는 이 책을 56일에 걸쳐서 읽은 셈입니다. 56일간의 철학 싸움 경기들은 한 편으로는 지루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장면도 간간히 보여줍니다.

마치 이종 격투기의 여러 경기들을 보는듯 하다고 할까요?

요즘들어 느끼는 거지만, 가장 힘들때-주로 정신적으로 심난하고 마음을 잡기 어려울 때- 약처럼 쓸 수 있는 게 바로 이런 철학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효과를 발휘하는 약성분 자체는 완전히 알지 못하지만, 어떤 병에 어떤 약이 좋을지 알고 사용하는 가정 상비약처럼 말이지요. 물론 오남용은 금물일겁니다.^^;

이 책의 진행 방향은 하나의 철학적 사유 주제를 제시하고, 그에 따라 대립 양상을 가지는 두 철학사조를 차근 차근 설명하는 식입니다. 이것은 마치 제작년인가 유행했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비슷한 화법입니다.

폭주하는 기차를 막기 위해서 누군가 한 명을 희생하는게 옳은가? 아니면, 소수 한명의 생명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가같은 이야기들이 56장 내내 펼쳐집니다. 다소 머리 아픈 철학 용어 개념들을 개별적으로 이해하려고 전전긍긍하지 않는다면, 유수 철학자들의 쌈박질은 어느 정도 재미를 보장해 줍니다.

56가지 매치를 관람한 뒤에 드는 생각은 과연 또 다른 난입 대상인 철학 사조가 들어간다면 어떨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드는 생각은 과연, 하나의 현상에 대한 대응 방법들에 대해서, 옳고 그름의 정의를 함부로 내릴 수 있을까라 거였습니다.

우둔한 제 머리로는 이 책의 정수를 다 파악할 수 없었겠지만, 철학이라는게 단순히 골치 아픈 교과서에 실린 말장난뿐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보다는 어떤 하나의 현상에 대해 원인과 이후 벌어질 사항에 대한 예측을 위한 머리속 시뮬레이션이라고 저는 받아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결을 벌이는 두 철학 중 어떤 한 철학이 일방적으로 낫다라고 손들어 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프레임도 풍경 모두를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철학이라는 사유 프레임은 단지 현상에 대한 일부로서 제안되는 것 뿐이니까요.

그래서, 이 책에서는 각 철학 사조를 설명하면서, 제시된 사항에 대한 모순점도 여지 없이 들춰 냅니다. 이를 통해서 어떤 철학 사조도 영원히 그리고, 완벽한 건 없다라는 걸 배우게 되더군요. 그렇지만, 이러한 지적질(?)은 꽤 유쾌한 면도 있습니다.

(젋은)비트겐슈타인 대 (늙은)비트겐슈타인의 대결(유일하게 혼자서 양자 대결을 펼치는 철학자입니다. 그만큼 그의 높은 위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습니다.)에서 보이는 한 인간이 가지는 철학 사조의 변화 혹은 확장은 그런 자기 모순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과 극보을 하고자 하는 열망에 의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지적 대결을 통해 자신을 보완해 가는(물론, 운이 조금 없는 철학 사조의 경우는 기본 바탕부터 무너져 회생 불능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철학사조들의 모습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여러 편리한 도구들의 진화 과정을 보는듯 합니다. 사실, 그러한 철학들의 진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천동설에서 지동설을 받아 들이게 되었고, 외과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철학이라는 생각들의 대결이 아니라, 그 이후 펼쳐지게 되는 세상의 변화, 그리고, 그러한 사조들이 나올 수 밖에 없던 배경들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설명해 줍니다.

결국 이 책을 덮고 난 뒤에 제가 깨달은 유일한 한 가지는… 철학은 세상을 보는 프레임적 도구다라는 거였습니다.
어떤 넓은 프레임도 세상의 현상을 모두 담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현상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집중할 뿐이지요.

많은 생각들의 충돌을 경험하게 될 때, 그리고 이로 인해 혼란을 느낄때, 아마도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른 여러 생각들이 가지는 기저에 깔린 철학의 프레임에 관한 이해를 하는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시기도 시기인데… 아무래도 이 책은 대선 후보들이 한 번쯤 읽어 보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건방지지만 현재 지지하는 후보에게 이 책을 보내볼까 합니다.

jijab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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