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해를 보내는 eBook탐정의 소해(1)

출처 : 다음 블로그(http://blog.daum.net/jijabella/18350179)

2010년이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안남은 2010년 어떻게 마무리 준비를 하고 계시나요? 저에게 있어서 올 한해는 상당히 의미있는 해였습니다. 이 카테고리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전자책 관련된 사항중에 제 자신의 올 한해 인생사(?)도 포함되기에 넣어 보입니다.

0. 2009년까지의 이야기…
3년 전 처음 입사 했을 때 회사에서 거들떠 보지 않았던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팹리스 회사를 끼고 진행하던 프로젝트였는데, 그 발주자는 플라스틱 로직스라는 독특한 이름의 회사였습니다. 네,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플라스틱 백패널판을 이용한 e-ink패널을 개발했고, 10인치 전자책 단말기인 Pro-Que를 출시하려고 했던 바로 그 회사입니다.
당시 제직했던 회사는 그 회사에 DrIC패키지 개발과 양산 납품을 기획중이었습니다.

이미 3년여 전인2007년도 경에 샘플 막바지였었습니다. 그리고, 차일 피일 양산을 미루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투자 유치문제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왜냐하면, 저희 쪽에 막판 발주 제품은 2007년 샘플 제품과 거의 변경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취업 교육을 받을 때도 디스플레이 센터에서 e-paper에 대해 공부했던 터라, 상당히 반가운 아이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진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당시 근무하던 회사는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PDP용 DrIC패키지를 모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었는데, 첫 번째 우선 벤더가 아닌, 서드 벤더 격이었기 때문에 납품 단가와 개발 기간 등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전에 도입해 둔 기기들은 상당히 노후한 실정이어서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많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플라스틱 로직스사의 DrIC는 저에게 상당한 가치를 지닌 아이템으로 보였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제 든든한 지원자이셨던 S차장님은 해당 기술을 응용할 수 있는 것들을 알아 보라는 특단을 내리셨었습니다.

나중에 차장님에게 듣게 된 사살이지만 “너에게 내가 줄 수 있는건 지식도 경험도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 공부 기간 중에 저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북큐브, 네오럭스, 서전 미디어텍 등의 담당자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상당히 소중한 경험이었고, 지금도 많은 부분에서 이때 들은 말씀드링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 제가 소망했던 계획은 국내 개발사 제품의 OEM 생산을 1차적으로 완수하고, 이를 기와로 플라스틱 로직스의 제품의 제조와 유통에 관한 트라이였습니다.

매우 조악하고 황당한 계획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당시 저는 근무하던 회사가 DrIC라는 반도체 단계에서부터 전자책 단말기라는 완전체 디바이스까지 턴키 제작을 하는 가동을 꿈꿨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렴풋하게 콘텐츠의 필요성에 대해서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자제품만으로는 생명력이 짧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자가 출판에 관심을 가진 것도 이시기였습니다.

딱히 좋은 성과는 없었지만, 하나씩 배워가던 시절이었는데, 이 때 S차장님이 이직을 하시게 되었고, 제 바로 위에 있던 K대리가 개발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삐거덕 거리기 시작합니다.

K대리는 공정(생산)엔지니어였고, 저처럼 CAD를 이용한 설계나 개발 기획에 대해서 고운 시선을 보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설상 가상으로 제가 좀 방황(?)을 한 관계로 제가 연배도 한 살 더 많아서 대하기가 껄끄러웠다는 뒷이야이가도 들렸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제가 전자책에 관심을 가지는 걸 상당히 못마땅하게 여겼었습니다. 가끔 술자리에서 “광희씨 그거 때려치워.”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했습니다. 뭐, 그래도 작년까지는 그럭 저럭 넘어갔습니다.

1. 2010년… 시작은 개떡 같았다.
2009년 막판에 플라스틱 로직스의 발주를 직접 받았던 미국의 디자인 회사는 새로운 DrIC패키지 설계와 샘플을 요구했었습니다. 설계 요구사항 페이지 스캔중 일부에 일본 글자와 H사가 언급된 걸로 보아서, 일본쪽 메이커라는 짐작을 했었습니다.

당시를 돌이켜 보면 전자책 단말기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올랐었습니다. 문제는 2010년 벽두부터 스티브 할아버지가 아이패드를 들고 나왔다는 거였습니다. 발표 소식을 들었을 때 상당한 충격이었고, 기분이 시체 말로 더러웠습니다.-_-a

뭔가 한방 제대로 먹었구나라는 느낌이 집에서 회사인 안산까지 출근하는 2시간 내내 머리속에 맴돌았었습니다. 당시 제가 그 심정을 살려서 한 인터넷 사이트에 기고한 글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때 심정을 조금이라도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http://www.skyventure.co.kr/insight/business/view.asp?Num=16826&NSLT=Y

아니다 다를까… 미국 회사로부터 당장 양산형 부품을 납품해 달라는 요청 메일이 날아 들었습니다. 이전에 느긋했던(무려 장장 3년이 넘게 샘플만 소량으로 요구했었던 회사가…) 상당히 말도 안되는 짧은 기간 안에 상당한 물량을 요구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금년 1/4분기때는 평판 패널용 DrIC의 소재인 TAP 필름(동박에 폴리아미드재질이 압착된 소재) 수급이 어려워집니다. 올림픽과 3D 이슈등으로 LCD물량이 급격하게 폭발했고, 그 외의 패널들에게는 미처 해당 소재 물량이 배당되지 않는 총유의 사태를 맞이합니다.
회사는 회사대로 상대적으로 물량이 적은 미국 회사보다는 기존에 납품하던 대기업 납품에 더 힘을 쏟기로 결정합니다.

돌이켜 보면 당시에 소재 품귀가 없었다면, 플라스틱 로직스의 QUE는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지만, 위의 기고 글에도 밝혔듯이 아이패드가 나오기까지 너무 늦장을 부린게 화근이었습니다. 4월 발매 예정이 계속 늦춰 졌고 급기야는 프리오더 비용을 되돌려주고 프로젝트가 종결되고 맙니다. 비슷한 컨셉의 스키프 리더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 합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쓰고 있지만, 그래서 제가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게 애증을 가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회사내에서 전자책을 해 보자는 의견을 낸 제 입지는 상당히 좁아졌습니다. 아울러, 그 때부터 팀장인 K대리는 공공연하게 ‘일은 안하고 쓸데없는 것만 하더니 아직도 정신 못차린다.’라는 핀잔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관계가 틀어진 건 이때부터였습니다. 그나마 중간에서 갖 입사한 J대리(현재 LGD에서 근무 중)가 매번 중재를 해서 넘어갔지만, 계기는 언제라도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2. 진급 누락… 회사와의 괴리감.
금년 3년차 회사 생활때 저는 대리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기대와는 다른 결과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사 발표때 저는 여전히 평사원이었고, K대리는 과장으로 진급해 있었습니다. 분노보다는 실망감이 더 컸던 시기였습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보셨던 분들은 아마도 이해하실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진급이라는 결과물이 아니라, 회사가 그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한 회사만 납품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회사 방침이라는 것은 떠나야 할 시기라는 암시였습니다.

중재를 도맡았던 J대리도 떠났고, 팀장과는 더욱더 벌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황은 K과장에게 유리하게 돌아갔습니다. 해당 대기업 사업부 역시 상당히 힘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신규 개발에 대한 요청이 저희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자연히, 설계/개발 보다는 생산/공정쪽에 회사는 더 기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5월 말 사표를 내게 되었습니다.

힘든 결정이었고 쓸쓸하게 퇴장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수고했다는 누구의 한 마디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회사 전체 메일로 “떠납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도망가듯이 짐을 챙겨 나갔습니다.

3. 전자책에 관한 일을 해보고 싶어요. 저를 써주세요.
부끄러운 과거거 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길벗으로 오기전까지 전자책 관련된 일을 하는 곳에 모집 공고가 나면 가리지 않고 계속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3년 전에 했던 일을 다시 반복하고 있었지요.-_-a

짐작하시겠지만 쉽게 기회가 오지는 않았습니다. 모집 공고는 주로 서점등의 유통 업체들이었는데, 서류심사에서 조차도 번번히 탈락했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헤드헌팅 업체에도 부탁을 해봤지만, 돌아온 답변은 “당신은 필요없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경제적으로도 슬슬 압박이 오고 있었습니다. 이전 회사에서 퇴직금 정산을 미루고 있었습니다.-_-a 먼저 나가셨던 S차장님도 당하셨던 일인데, 소위 회사를 떠났다는 괘심죄로 골탕을 먹이는 수법이었습니다. 직장 이전이 될때까지 퇴직금을 미루어서 고통을 주는 악랄한 수법인데, 직장 이전이 완료되면, 행정 문제가 걸릴 것을 우려해서, 일시급지불로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 나갔었습니다.(이직한 회사로 세무 관련 자료들이 넘어오고, 넘겨야 하는 의무 때문이라네요.)

다행히 통장에 잔고가 제법 있어서 버틸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가 길지 않다는 것은 잔고가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미래에 나만의 작은 출판사를 갖기 위해 꿈의 조각처럼 모아왔던 숫자들이 조금씩 줄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뭐, 다른 어려운 경험을 해 보신 분들에게는 별거 아니겠지만, 당시의 저로서는 미칠 것 같았습니다. 0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오면 과연 내 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미칠 것 같은 건… 전자책 시장에 대한 기사들을 볼 때였습니다.

“나도 저기에 갈 수 없을까?”
하는 이상과 동시에 현실에서는
“저를 써 주세요.”
라는 구걸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세상 모두가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자격 지심을…

4. 몰핀…
번역을 하는 아니 언니(아시는 분은 아시는)로부터 이 당시에 이런 충고를 받았습니다.
“명함을 하나 만들어.”

5월에 회사를 그만 둔 이후에 제가 하던 일들은 전자책 관련 종사자들을 찾아 가는 거였습니다. 상당히 무모하고,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해당 업종에서 일하기 위해서 제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이 너그러우신 고마우신 분들은 저에게 기회를 주셨었지만, 일부 일에 바쁘셨던 분들은 쉽게 기회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걔중에는 현재 직장으로 옮기고 난 뒤에 만나 뵐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사실, 근본도 모르는 소위 말해서 듣.보.잡.(듣고 보던 못한 잡놈)에게 아까운 자기 시간을 내주는 것은 상당한 결단이 있어야 했을테니까요.(지금은 운좋게 제가 그 반대 입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연배가 적으신 학생분들이 주로 인터뷰 요청을 해주시는데, 몇 달전의 제 처지도 있고, 독자들 트렌드를 파악하고자 거의 빠짐없이 응해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눈앞에 닥치는 일 외에는 잘 안보는 성격이라서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습니다.-_-a

그냥 무작정 메일을 보냈습니다. 몇 번 보내서 기회를 얻으면 만사(백수가 일이 있겠습니까만은… 저희집이 벽지 가게를 하기 때문에 가끔 공사 현장에 가야 하는 것도 빼고 나왔었습니다.)제쳐두고 해당 담당자를 찾아 뵙고, 현재 시장에 관한 사항들을 듣거나 궁금한 사항들을 질문했었습니다.

이때 만든 명함 덕을 크게 봤습니다. 당시 무직자였던 저는 번번히 상대 분의 명함을 받을 때마다 매우 힘들었습니다. 직장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나 부끄럽고 처량하게 느껴질 수가 없더군요.
지인 언니의 충고대로 명함을 만들고, 명함 교환때마다 내밀게 되니 조금은 기분이 한결 나아졌었습니다. “eBook탐정”이라는 타이틀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도 이 당시였습니다.

말하자면 명험은 그 당시 걱정을 잊게 해준 몰핀이었습니다.

5. 문명의 헤택…
트위터를 하면서 제가 주로 하는 일은 다른 분들의 트윗을 보는 것(읽는다기 보다는 보는 것)입니다. 별다르게 말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위트나 유머 감각하고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특별히 이슈화 될 말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습니다.

대신 팔로윙 했던 전자책과 소셜 미디어, 마케팅 종사자들의 트윗을 보고 있었습니다. 없는 돈에 아이폰을 구입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6월에서 7월 초 경에 rt로 메시지가 하나 돌았습니다.
“길벗에서 전자책 담당자를 구한다.”라는 글이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참 운이 좋았습니다. 당시 rt를 해주신 분이 저희 회사 웹마케팅이 허두영 팀장님이셨는데, 그 분이 무려 두 번의 rt를 해주셨고, 제가 마친 그 트윗을 매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허팀장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rt때 이력서를 보냈지만, 연락이 없었습니다…-_-a 뭐… 내 능력이 아직은 부족하겠거니 생각했는데, 같은 내용의 rt가 또 한 번 돌았습니다.
“어? 뭐냐 이거.”…ㄱ-

그 당시에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보냈습니다. 물론, 일부 수정 사항이 있었습니다만, 사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보나마다 또 떨어지겠지 싶었습니다. 최근에 들었지만, 처음에 보냈을 때 많이 고민들 하셨다고 하더군요. 너무 전자책 전용 단말기 이야기로 설을 풀어서…ㄱ-a

어쨌거나 제 자신도 황당할 정도로 한 번 탈락했던 곳에 다시 한 번 보낸게 운좋게 들어 맞았습니다.
“언제부터 출근 가능합니까?”라는 질문에 “8월부터 당장이요!”라고 대답할 정도로 합격 소식을 들은 7월 말에는 상당히 들 떠 있었습니다.

참 운이 좋은 경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한국에 트위터가 보급되지 않았다면? 허두영 팀장님이 무려 2번의 길벗의 모집 공고 rt를 해주시지 않았다면? 길벗의 임원진들이 다시 도전한 대상자를 여전히 면접 후보자로 넣어주지 않았다면? 등등…

초반에 도망갔던 운들이 여름 이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부어진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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