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말린

나는 죽었다. 하지만, 내 영혼은 아직 나의 육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이제는 기억할 수 없다. 내 죽음에 대해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더 살고 싶은 마음 따위도 없었다. 또한 젊은 나이에 죽어서 억울한 심정도 그나마 나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난 내 죽음에 대한 기억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본래 난 이승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곧 바로 승천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를 데리러 왔던 저승사자도 ‘젊은 놈이 너무 쉽게 세상을 포기하는군.’이라며 의아해 할 정도였다. 확실히 난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곧바로 저승으로 가려는 찰나에 나는 승천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유는 나의 육신이 영혼을 가둬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승사자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굴러댔다.

“이런, 어떻게 이런 일이. 어쩌면 좋단 말이냐?”
“할 수 없군요. 하지만, 저 사람들도 천년만년 나를 붙잡아두고 있을 것도 아닌데. 언젠가는 놓아주겠지요.”
“어이구! 이 천하의 태평스러운 놈아! 네놈은 가든 안가든 상관없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란 말이다. 아이고 이를 어쩌면 좋을까.”

솔직히 저승사자가 그렇게 불쌍해 보일 줄은 몰랐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인도하는 것도 우리가 아는 것만큼 쉬운 일은 아닌 듯 했다. 나는 그에게 뭐라고 위로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선뜻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하기사, 내가 그를 위로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주제파악도 못하는 웃기지도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인간 놈들 꼭 괴상한 짓거리만 해대서. 에이. 좋아, 어쩔 수 없지. 오늘은 그냥 가마. 대신, 너 어디로 내빼면 안 된다.”
“걱정 마세요. 어차피 육체에 갇혀서 움직일 수도 없는 몸. 아니, 영혼인데 어디로 가겠어요? 적당한 때에 잊지 말고 빨리 오세요.”
“알았다. 그럼.”

저승사자는 못미더운지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면 그도 이 일을 수행하면서 꽤나 고생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나는 남았다. 한 대학병원 창고에 그네들이 포르말린이라고 부르는 소독 용액 속에 담가져서.

살아 있었을 때는 이런 곳에는 근처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죽었고, 내 죽은 몸은 나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에 의해 옮겨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다 해도 나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제 그러한 마음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곳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정확한 수는 헤아릴 수 없었지만, 내 생각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들 모두가 살아생전에는 각자의 인생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일들을 했을 것이다. 동물을 기르기도 했을 것이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학생일 때는 공부도 열심히 했겠지. 아마 누군가와 사랑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단지 포르말린 용액 속에 담겨져 빠져 나가지 못하는 가엾은 영혼들일뿐이다.

“이봐, 자네는 어떻게 하다 그 꼴이 되었나?”

바로 밑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확인하려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 몸은 죽었고, 그 육신 속에 내 영혼은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라? 이미 승천했나?”
“잘 모르겠어요. 전 왜 죽었는지.”
“뭐야? 아직 있잖아. 제길!”

밑에 계신 분은 상당히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았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몸이 깨끗한 걸 봐서는 글쎄… 무슨 백혈병 같은 건가? 말도 말게, 자네는 지금 내 위에 누워 있어서 보이지 않겠지만, 내 몸은 완전히 걸레처럼 되었다네. 시발! 그 새끼들이 갑자기 뒤에서 치는 바람에…”
“싸움하시다 죽으신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뱃다지에 칼침 한 방 먹고 죽었는데 그걸 그 새끼들이 차로 다시 뭉개 버렸지 뭔가. 그래서…”
“무척 아프셨겠군요?”
“그래. 그나저나 자네 알고 있나? 우리가 어떻게 될지?”

별로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차피 나는 죽었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적어도 예의라는 것을 아는 놈이었다. 밑에 있는 사람이 분명 나보다는 연장자임이 확실 할 것이다. 응당 그의 말을 들어주어야 했다.

“아니오?”
“실험실로 가서 해부용으로 쓰인다네.”
“그 다음 에는요.”
“그 다음… 그 다음은…”

그는 다음 말을 찾지 못한 채 우물거리기만 했다. 아마도 그도 그 이후의 일은 자세히 알지 못하는 듯 했다.

“그 다음에는 저희를 버리겠지요? 그리고, 언젠가는 몸이 썩어서 승천을 할 거구요.”
“뭐? 안 돼! 승천이라니? 난 여기서 오래 살고 싶어!”
“하지만, 저희는 이미 죽었어요.”
“아니야! 난 죽지 않았어!”

정말이지 절규에 가까운 처절한 소리였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절망적이고 처절하도록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그다지도 어렵고 절망적인 것이었을까?

“휘유! 여긴 언제 들어와도 섬뜩해.”

나는 직감적으로 내 몸이 바깥세상으로 나 갈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흰 가운을 입은 두 사람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우와, 이번에 들어온 시첸가? 되게 깨끗하네!”
“2학년생들에게 주기에는 어쩐지 너무 아까운데?”
“킥! 왜? 네가 데리고 살려고?”
“농담마.”

나를 둘러싼 채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 그들은 이내 곧 내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용액 속에 떠 있던 내 몸이 몇 번인가 출렁거리더니 바닥으로 내려졌다.

“욱! 이건 뭐야? 누가 이런걸 담가 났어?”
“몰라. 배에 칼을 다섯 번 찔리고 자동차에 깔리기까지 했대. 정말이지 끔찍하군.”
“이런 건 갖다 버리지, 정말.”
“아닌 게 아니라 교수님들한테 얘기해야 겠어. 아무리 실습용 시체가 부족하다고 해도 이런 건 좀 너무 심했어. 내일 당장 갖다 버리자.”

그들은 무심코 뱉은 말이었지만, 그 말은 한 사람에게는 절규와도 같은 괴성을 지르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자식들아! 나 아직 안 죽었어! 나 이렇게 살아 있단 말이야!”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렇게 악을 쓰고 소리를 질러 본대도 살아있는 사람들이 우리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해 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한대 봐야 이미 죽었는데. 왜 그렇게 살아 있다고 악을 쓰는 걸까? 이미 죽었는데.

“빨리 옮기자. 어쩐지 여기는 너무 의시시해.”
“자식, 쫄기는. 그래, 어서 가자.”

그로부터 얼마 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두 사람이 실습실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옮겨졌다. 그곳은 내 몸이 들어 있던 상자 안의 액체와 비슷한 냄새가 벽 구석구석에까지 남김없이 배어 있는 곳이었다. 아마도 내가 처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숱한 냄새를 두고 보자면 말이다.

내가 누워 있는 곳은 탁자 위였다. 탁자 둘레에는 여러 가지 기묘한 모양의 도구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것들이 내 몸을 열고 헤집고 꿰맬 때 사용하는 물건들인 모양이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문득, 생선 가게에 팔려온 죽은 생선들이 생각났다. 이미 죽은 그들이지만, 인간에 의해 다시 한 번 더 죽는 생선들과 내 신세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서글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뭐 어떠랴. 나는 이미 죽었는걸. 어차피 죽어서 썩어 없어질 몸, 그깟 칼 몇 번 긋는다고 해서 달라질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 니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난 죽었다.

“우, 정말로 갖다 놨잖아, 이거.”
“자식, 그럼 농담인줄 알았냐?”
“어떻게 해. 오늘 진짜 해부 실습한다고 하던데.”

내가 혼자 이리저리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아마도 그들이 나를 해부할 실습생들인 모양이다. 지도 교수의 한차례 일장 연설이 있은 직후에 드디어 본격적인 해부가 실시되었다. 몇몇 학생들은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이봐, 그렇게 놀라지 말라고. 너희들도 죽으면 나하고 별반 다를 거 없어. 어? 뭐야, 저 녀석? 이봐, 날 한 번 봤다고 구토까지 할 거 없잖아!
실습은 한마디로 요지경에 돛대기 시장 바닥 같았다. 여기저기서 신음 비슷한 소리들이 새어 나왔고, 입을 틀어막은 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급히 튀어 나가는 녀석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그런 이들과는 달리 나를 두고 아주 한심한 농담을 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한 명이 나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은 전광석화와도 같았다. 내가 미쳐 눈치 채기도 전에 그녀의 손에 들린 메스가 이미 내 피부를 가르고 내 몸속을 개방시켰다. 그 놀랍도록 빠른 속도에 나는 미처 비명조차도 지를 틈이 없었다. 그녀와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미 내 주위에서 나가떨어진 지 오래였다.

그녀는 마치 애무를 하는 것처럼 내 온 몸 안을 휘저어 갔다. 그 기분이란… 글쎄. 솔직히 난 그런 쪽에는 아직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녀가 내 몸을 만질 때만큼은.

“자, 오늘 실습은 이만 끝. 자, 몇 사람 남아서 뒷정리를 부탁해요. 되도록 이면 남자들로.”

짧은 순간의 첫 만남을 뒤로 한 채 그녀는 그렇게 떠나갔다. 그녀가 나가고 난 뒤에 나는 다시 처음에 들어 있었던 상자 속으로 넣어졌다. 고약한 소독약 냄새가 느껴지는 순간 이미 내 몸은 그 안에 들어있던 액체 안에 떠 있었다. 그 안이 그렇게나 고약한 냄새와 답답함을 느끼게 했을 줄은 그 순간 처음 깨달았다. 난 어떻게 이렇게 비좁은 상자 속에서 이때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의문들. 불평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슬금슬금 내 몸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죽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죽었는걸.

“내일도 또 해야 돼?”
“응, 적어도 3개월. 이번 학기까지야.”
“빌어먹을!”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나는 왜 그들의 말을 듣고 그렇게 좋아했을까? 그것은 아직 남은 삶에 대한 애착이었을까? 아니다.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난 이미 삶에 대한 애착 같은 것은 던져 버린 지 오래지 않은가.

그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 물음으로 인해 꼬박 하루 밤을 넘겼다. 그리고, 내가 답을 생각하기도 전에 어제의 학생들이 다시 들어왔다. 내 몸이 다시 탁자 위에 놓여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교수의 지루한 연설이 끝나자마자, 또 다시 여러 가지 아우성들이 들려왔다.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어제와 다름없이 그녀가 역시 내 몸을 맡았다.
오늘은 차가운 메스가 아닌 따뜻한 그녀의 손이 내 몸을 먼저 더듬었다. 그녀는 교수의 설명에 따라 한창 나의 오른 팔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오늘 시간 있어?”

조금은 느물느물한 목소리에 그녀는 잡고 있던 내 팔을 놓았다. 그녀의 한 마디는 가차 없었다.

“시간 없어.”

그리고, 그녀는 다시 그 따뜻한 손길로 내 팔목을 잡았다.

“이봐, 그러지 말고. 너 정말. 내가 이런 시체보다 못하단 거야 뭐야?”

이봐, 학생. 이런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시끄럽게 굴면 어떡하나? 그리고, 내가 너보다 못 하다는 말은 또 뭐야?

“응. 확실히 이쪽이 내 타입이야.”
“쳇, 그렇게 좋으면 같이 살지 그러냐?”
“그럴까봐.”

남자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녀는 이번에는 내 왼팔을 들어 올렸다. 솔직히 그녀가 그렇게 대답했을 때, 나 역시도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 죽지만 않았다면…
문득, 만약 내가 죽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살아 있는 몸으로 그녀를 만나 그녀의 눈을 똑똑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만이 나의 몸을 만지고 느낄 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그녀를 직접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할 수 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죽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살아 있었다면 시체나 만지는 이런 여자를 나는 만날 생각이나 했었을까? 그리고, 이런 감정을…
아니, 그만 두자. 나는 이미 죽었어. 이런 감정은 나에게 원래 있을 수 없는 거다.

문득, 그녀와 헤어지는 상상을 해 보았다. 내 몸은 이번 학기에 그녀의 실습이 끝나면 사라질 몸이라는 사실. 그녀는 아마 일평생을 산다해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녀 생전에 나를 만났다는 사실을.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이지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나는 그녀를 알고 그녀를…

하지만, 그녀는 나라는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다니. 그녀에게 있어서 나는 단지 실습용 도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나에게는 너무나 괴로운 진실.
내 팔을 들고 있던 그녀의 손길이 멈추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내 팔을 내려놓은 뒤에 어제와 마찬가지로 실습실을 떠나갔다. 나는 다시 그 지독한 냄새가 나는 상자 안으로 넣어졌다.
소리치고 싶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나는 내 자신이 살아 있다는 착각을 했다. 아니, 그런 것보다도 나는 우습게도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우스운 일이지만.

매일처럼 그녀와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알지 못했지만,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봐야 고작 내 몸의 모든 것을 그녀로 하여금 잘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분명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즐거운 작은 탄성이 나올 때면 나 역시도 마차가지로 그녀와 같은 감정을 교감하곤 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녀가 몹시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낮게 신음 소리를 내면 나는 너무도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안타까웠다. 내가 그녀에게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저주스러웠다.

그녀는 메스와 가위를 들고 내 몸을 가를 때면 자신도 모르게 흥에 겨워 콧노래를 부르곤 했다. 처음에는 조금 낮고 작은 소리로 시작되던 그녀의 이 아름다운 음색은 이윽고, 절정에 이를 때쯤이면 그녀 자신도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에 휩싸여 그녀만의 높고 커다란 음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이미 그녀의 입은 크게 열려져 그 즐거운 소리들을 분명하고 아름답게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 차가운 영혼도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따뜻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느끼던 그 흥분된 감정들. 아마도 난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도 그것들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떠날 때면 미열처럼 남은 그날의 감정들을 꼭 끌어안으며 나는 다시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어서 내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설래 이는 마음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다. 어서 빨리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빌면서.

이것이 어느덧 나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마치 오래 전부터, 태어나기 전부터 해 왔었던 것처럼. 그 일들이 나의 기억 속에 눌러 붙어 버린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그녀가 매일처럼 나를 만나기 위해 올 것이며, 그녀가 오지 않는 날은 아마도 이 세상이 끝장나는 날일 것이라고 굳게 믿어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내 영혼을 송두리째 삼켜버릴 정도로 커져 버렸다.
어느 날 나는 내 몸을 만지는 손길이 그녀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녀와는 달리 거칠고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야수의 것과도 같은 놀림이었다. 나는 그런 손길에 맞서 절대 내 몸을 보여 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야! 이런 빌어먹을!”
“이런, 자기 메스에 베이는 바보가 어디 있어?”
“젠장할. 소독약하고 밴드. 아니 그보다는 치료실로 가야겠군.”

한동안의 소란을 듣고 나서야 나는 그녀의 신변에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당장에 일어나 그녀에게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를 위로해주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죽었다. 당연하지만, 죽었기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으악! 빌어먹을!”

나는 가슴이 찢어져라 소리쳤지만, 이미 내게는 찢어지고 싶어도 찢어 질 수 있는 가슴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나는 죽었고 육체를 잃었기에 그녀의 아픔을 함께 할 가슴도 그녀에게로 달려갈 다리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것이 한탄스러웠고 저주스러웠다. 너무나도 빨리 죽어버린 내 자신이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나는 생각할 수 있는 저주란 저주는 몽땅 내 자신에게로 퍼부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내 분노가 가실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저주와 분노와 한탄이 극에 이르렀을 때 나는 그만 목 놓아 울고 말았다. 울음은 언제 그칠지 모를 정도로 계속해서 흘러 넘쳤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남아있던 저주와 분노와 한탄은 눈물로 서서히, 내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한스러움으로 변해 갔다.
얼마나 울었을까? 그 사이에 저 어두컴컴하고 냄새나는 상자와 밋밋한 탁자 위를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했었던 것 같다.

“어머나, 그새 몰라보게 변했네?”

그녀의 목소리.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돌아왔음을. 하지만, 나는 좀처럼 그녀가 돌아 왔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 그녀가 돌아오다니. 이럴 수가, 이건 기적이야.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을 기다렸다. 그리고, 오! 그녀는 분명 돌아왔다! 그제서야 확신 할 수 있었다. 그녀가 다시 내게로 돌아 왔다는 사실을.

“이런 안보는 사이에 좀 여윈 거 아니야?”
“당신을 기다리느라 조금 지쳐서요.”
“내가 없는 사이에 다른 누가 건드린 건 아니겠지?”
“물론이에요. 나에게는 당신뿐인 걸요.”

다시 즐거운 일상이 시작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녀의 떨고 있는 손길을 느끼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는 죽어서까지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남자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녀의 친구라고 생각되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긍정도 그렇다고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떨리는 손길로 내 몸을 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세하게 떨리던 그녀의 손은 이윽고 더 이상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파도에 휩싸여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내 몸을 더듬어 가던 그녀와 나의 짧은 재회의 기쁨은 그렇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오랜만이라서 그래. 실습실 들어온 게… 그 뿐이야.”
“정말 그뿐일까? 그것뿐인 거야?”

나는 묻고 싶었다. 그녀의 작은 어깨를 잡고 흔들 수 있는 손과 팔들이 있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묻고 싶었다. 옹졸하고도 치사하고도 추악한 마음이 가득 담긴 이 질문을. 그녀가 싫어하고 두려워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그 질문을.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입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여리고 약한 어깨를 잡고 흔들 팔도 나에게는 이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 그것은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녀에게 상처를 줄 수 없는 현실이 분명 다행이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를 슬픔으로 또 다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녀가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물은 전혀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이제는 그녀의 손길이 내 몸이 닿아도 전과 같은 감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손길은 이제 즐겁지 못하고 무의미하고도 지루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녀의 손길은 차츰 전과 같은 애정을 쏟지 않았다. 마치, 정육점 주인의 그것처럼 그녀의 메스는 내 육체를 사정없이 유린했으며, 저울에 올려놓는 고깃덩어리 대하듯이 그녀의 손길은 내 몸을 사납게 움켜쥐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 어쩌면 이게 서로에게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본래 그녀와 난 교보재와 실습자라는 단순한 관계였을 뿐이었다. 그러던 것을 순전히 내 본위에 의해 나 혼자서 미묘하고도 복잡한 감정의 관계를 가지게 되었던 것뿐이다. 애초에 그녀에게 있어서 나라는 존재 따위는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나는 단지 속을 잘 훑어 낼 수 있는 훌륭한 해부학 실습 자료일 뿐이었다.
그래, 잊자. 모든 것은 꿈과도 같은 것. 모든 것을 잊어버리자.

“미안해. 너에게 괜한 화풀이만 해서.”

갑작스럽게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에 놀란 것은 이미 수업이 끝난 직후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아직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실습이 끝났기 때문에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내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상자 안에 누워 있었다. 그런 가운데에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고 묘한 감정마저도 불러일으켰다.

“널 보면 왠지 그 사람이 생각나서… 이상한 일이지? 너하고 전혀 닮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너에게 심술을 부렸을까? 그런데… 흑흑… 미안, 조금 울어도 괜찮겠지? 그 사람 아직도 잊지 못하겠어.”

아, 나는 너무나도 이기적인 녀석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 마음만 중요하게 생각 할 뿐이었던 것이다. 정작 가장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은 그녀였을 텐데.
그 순간. 그 순간만큼은 상자 안에서 일어나 그녀를 안고 싶었다. 그렇지만, 참을 수 없는 이 욕망이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조용히 울고 말았다.

그때, 전혀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정말이지 직접 보고도 전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녀가 나를 가만히 안아 주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들어있는 상자를 마치 나인양 그녀는 꽉 끌어안아 주었다.

그 순간만큼 그녀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의 살결, 냄새, 숨소리 모든 것이 황홀하기까지 했다. 그로 인해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아집, 분노, 미움, 저주, 한들이 모두 일시에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행복해졌다. 그녀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안녕? 좋은 아침이야.”
“안녕? 오늘은 더 아름다워 보여.”

이제 그녀와 나의 하루의 시작은 이러한 인사를 주고받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전과는 또 다른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해주는 행복의 하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인사를 주고받은 직후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내 몸을 내보였고, 그녀는 그러한 내 몸을 조심스럽고 세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들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나는 그러한 그녀의 손길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 온 날들과 그녀를 만나서 느끼는 지금의 감정들. 모두 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녀와는 헤어질 시간이 되고 만다. 아직 그녀에게 말해 줄게 산더미처럼 많아 아쉬웠지만, 늘 그렇듯이 다음날 그녀를 만나기를 기대하며 애써 그녀를 보내곤 했다. 그리고, 홀로 남은 상자 안에서 그녀에게 내일 해줄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즐거워했다. 어느 사이엔가 내게는 그녀를 기다리는 순간마저도 행복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전과 같은 조바심이 아닌.

내게 남아 있는 시간은 이제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그러한 시간마저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제 그녀와 내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촛불처럼 점점 더 짧아져 가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에게서 가끔씩 나오던 행복한 미소의 기운이 가득 담긴 한숨은.

“자, 오늘로서 이번 학기의 마지막 수업이다.”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을. 이제 그녀와는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을 끝으로 내 몸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육체의 결속을 잃어버린 내 영혼도 역시 이 세계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슬프다.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다. 하지만, 정작 눈물은 쏟아지지 않는다. 눈이 없어서가 아니다. 마음에서조차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 수업.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순간들. 나는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 지내는 그녀와의 마지막 그 순간을 나는 결코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보다도 더욱 더 열심히 내 모든 것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전에 미처 다 끝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며, 기약을 잊은 채 다시 하지 못한 이야기들, 부끄로운 나만의 비밀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들까지도.
나는 그녀의 손길 하나하나가 닿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그녀에게 내 모든 것을 알려 주었다. 그녀 역시도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노력으로 열심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그만 벌떡 일어나고 싶은 충동마저도 느껴졌다. 비록, 죽은 몸이었지만 정말이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과는 달리 나는 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이 한탄스럽다거나 저주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기쁘기까지 했다. 내가 죽었기에 그녀를 만날 수 있었고, 내가 죽었기에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내가 이미 죽었기에 그녀는 내가 죽었어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라는 행복한 사실들이었다.

수업은 끝났다. 그리고, 아울러 그녀와 나 사이에 있었던 길지 않은 시간 속에 담긴 추억들도 그 마지막을 고하게 되었다. 내 몸은 더 이상 다시는 그 밋밋한 탁자 위에 놓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들어간 이 상자 역시도 이제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다시는 내 몸에 메스를 꽂는 그녀의 손길 역시도 이제는 영원히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어이구, 이제야 데려가게 되었군.”
“아, 어서 오세요. 그간별일 없으셨어요?”
“별일은. 그보다 너, 처음에 만났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구나.”
“예? 아, 그래요?”

저승사자의 지적이 맞을 지도 모른다. 처음에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상당히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그 무력하고 허무주의적이던 내가 아니니까.

“언제쯤 갈 수 있지요?”
“글쎄? 인간들이 네 몸을 화장하고 나서부터 일거다.”
“그래요? 제 몸은 화장되는군요.”
“이봐, 왜 그래? 기분 나빠 할 것 없어. 어쩌면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죽어서 자신의 몸이 썩는 것을 보는 것도 어떤 면에서 보면 오히려 곤욕이라고. 이봐, 듣고 있는 거야?”

화장이라. 그녀에게 나는 아무런 것도 남길 수 없다는 말에 조금은 힘이 빠진 느낌이었다.

“오다가 들으니 모래 후에 너를 태운다고 하더군.”
“모래요?”

그녀와 이 세상에 함께할 시간이 이제 이틀밖에 없다는 말에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분명 이제 내게는 아파할 가슴은 없을 텐데. 그것은 마치 살아 있을 때처럼 가슴이 아픈 그런 느낌이었다.

“안녕? 오늘이 마지막이지? 그 동안 고마웠어.”

그녀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전과 마찬가지로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마지막으로 안긴 그녀의 가슴에서 일렁이는 감정으로 인해 내 영혼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것과 나의 것, 그 두 개의 감정들이 한데 섞여 큰 파도를 일으켰고, 우리 두 사람은 그 파도에 거침없이 휩쓸려 버렸다.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그 시간만큼은 소중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들과 그 넘실거리던 파도에 맡긴 우리 두 사람 마음의 행방을.

“네 녀석 죽어서까지 연애질이야?”
“헤헤헤.”
“너무 깊게 미련 갖지마라. 넌 이미 이곳에 속한 몸이 아니야.”
“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한 대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로 인해 그녀를 너무도 사랑한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화장터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 간에 가졌던 감정들을 미처 정리하기도 전에 나를 담은 자동차는 화장터에 도착해 버렸던 것이다. 이미 내 몸은 도착하기 전에 말끔히 닦여져 다른 상자 안에 담겨져 있었다. 그 안에는 냄새나는 약도 그러한 냄새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전에 있던 약이 가득 담긴 그 상자가 조금은 그리워졌다.

상자 안에서 나온 내 몸이 어떤 어두운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어둡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곳이 아마도 내 마지막 정착 역인 듯싶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확실히 맞는 듯 했다.
언제까지나 어두울 것만 같던 그 안에서 갑자기 시뻘건 불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 몸을 서서히 태워갔다. 뼈 이외에 남은 부분이라고는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다 앗아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꺼내어진 내 몸은 요란한 기계음이 들리는 곳으로 옮겨졌다. 그곳의 육중한 기계들이 내 몸을 힘차게 눌러왔다. 그리고, 그곳을 통과했을 때의 나는 이미 한줌의 가루로 변해 있었다.
그러한 내 몸을 담은 것은 다시 조그마한 상자였다. 그리고, 또 다시 내 몸은 옮겨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처음과는 달리 매우 지루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자 안은 답답하고 어둡기까지 했다. 오랫동안 열리지 않던 상자 안에 햇빛이 비쳐들자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이곳에서의 내 마지막 여정이 끝이 났음을 깨달았다.

한줌 한 줌. 나의 몸은 멀리 흩어져 갔다. 다시는 모을 수 없게 멀리멀리 가버리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손! 내 마지막 한 줌을 뿌리던 그 손의 느낌! 그것은 분명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녀의 손이 틀림없었다.

“자, 이제 가자.”
“싫어요.”
“뭐?”

나는 내 손을 잡아끈 저승사자의 손길을 뿌리치며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이미 내 모습을 잃어버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이 내게는 행복이었으므로.

“이 녀석아! 너 그러다간 큰 벌을 받게 될 거야!”
“상관없어요. 그녀가 죽을 때 함께 데리러 오세요. 그때 당신을 따라갈게요.”
“이런, 이런.”

나는 행복했다. 비록 그녀를 만질 수 있는 손이나 사랑의 말을 속삭일 수 있는 입이 없다 한들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내가 있고, 언제 어디서나 그녀를 만날 수 있고 그녀를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나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가슴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 속에 들어 있는 나와 그녀만의 추억들과 사랑했던 시간들을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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